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

2017. 12. 1. 02:47귀신이 보인다

 


원래 귀신 찾아다니는 거 좋아해서 폐교나 폐가 찾아다니고

일부로 동아리 가입도 하고 해서 폐교 캠프도 하고 귀신 모임에서

폐교에서 분신사바도 하고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놀다가

뒤늦게 입대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를 지나 자대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부대 역사가 50년이 넘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부대로 가게 되었다.

신막사와 구관사가 어우러진 조선시대와 21세기가 공존하는 듯한

갈라진 누리끼리한 페인트 벽 건물과 깔끔한 붉은 벽돌 건물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관사가 부대 밖 군인 아파트로 옮기면서 구관사는 자연스레 폐쇄가 되었다.

워낙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고 찾아다니는 거 좋아하다 보니

역사가 오래된 우리 부대는 나에게는 꿈같은 공간이었다.

 

 

 

 

 


안될 때 돌아다니면 줘 터지고 뭐 돌아다닐 시간도 없지만

짬 좀 차면 부대 탐험을 꼭 하리라 다짐하며 열심히 군 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게 보통 일반적인 행정보급관이라면 구관사를 보면서

새로운 활용을 하려고 BOQ로 바꿔본다던지 장병 휴식공간으로 만든다던지

한다고 하던데 여기 보급관들은 구관사를 폐쇄된 체로 그냥 방치를 했다.

 

 

 

 

 

 

구관사는 6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 안전 문제로 폐쇄가 됐다고 하는데

거의 폐허가 다 되어서 건물에 창문이 남아난 게 한 개도 없고 덤쟁이덩쿨도

많이 자라서 벽을 에워싸고 있었다.

안에는 낮에도 빛이 안 들어오고 창문을 바라보고 있으면 속이 시커멓게 보였다.

바닥에 예전 군인가족들이 쓰던 생필품들이 낡아서 버려져서 썩어가고 있었으며

천장이 나무로 된 곳들이 곳곳이 무너져 내려서 더 을씨년스러웠다.

밤에는 진짜 아무것도 안 보이고 가끔 짬 타이거가 들어가서 우는소리가 들렸다.

 

 

 

 

 

 

부대구조는 연병장 앞에 신막사가 있고 뒤에 구관사가 있고

그 뒤에 양옥집 같은 2층 건물이 있는 구조이다.

그리고 좌, 우에 이사종 창고랑 탄약고가 있고 뒤 산 쪽으로 올라가면

언덕에 예전 부대에서 쓰던 창고와 건물들이 방치되어 있다.

짬지일 땐 그저 바라만 보고 일하느라 바빠서 정신이 없었지만

어느덧 세월이 지나서 상병이 되고 나니 주말에 시간도 나고

슬슬 부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지리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장이 된 이후 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내 계획은 다른 사람들이 다녀간 닳고 닳은 흔한 심령 스팟이 아닌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새로운 심령 스팟을 개척하는 것이다.

낮이 아닌 밤에 탄약고 근무할 때 구관사로 가서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심령 스팟을 체험하는 것이다.

 

 

 

 

 

 

분신사바도 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일딴 돌아다니면서 사진만 찍는 걸로 하고 PX에 가서 1회용 사진기를 구매했다.

근무가 한 시간 반이고 중간에 탄약고 순찰하면서 이상 유무 보고해야 하기에

내가 구관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은 많아봐야 30분이었다.

방독면 주머니에 사진기와 예비 배터리를 챙겨놓고 D-DAY를 기다렸다.

 

 

 

 

 

 

드디어 목표했던 그날이 밝았다.

탄약고 야간 3번 초였고 일직사관이 근무 때 잘 자던 본부 소대장이라

작전을 시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빨리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방독면 주머니의 준비물들을 다시 챙겼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구관사에서 돌아다닐 생각만 하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점호시간이 되었다.

근무시간에 끝난 인원들이 들어오는데 몸이 다 젖어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밖에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분위기까지 음산해지고 점점 기대감이 커졌다.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귀신을 본 적이 없고 겁대가리도 상실했었다.

그냥 귀신 스팟 가는 게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 같은 정도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에

동호회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내가 벌이는 짓이 무슨 짓인지도 모른 체 침구류를 피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소풍 가는 듯한 기대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근무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근무시간이 돼서 장구류 착용하고 웃으면서 행정반으로 가는데 3소대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일병 놈이 근무복 차림으로 나왔다.

웃으면서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행정반으로 들어갔다.

'너도 참 불쌍하다 ㅎㅎ 나랑 같이 근무를 서다니...'

거사를 앞두고 있던 지라 녀석이 내 제물이 된 거 같은 느낌이었다.

간단하게 신고를 하고 일직 하사 통제하에 근무지로 이동을 했다.

 

 

 

 

 

 

비가 주적주적 오는데 을씨년스러운 게 분위기가 귀신이 나올 거 같았다.

근무교대를 하고 3소대 녀석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놈도 놀래는 눈치였지만 구미가 당겼는지 같이 가지고 했다.

그래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같이 led를 켜고 순찰하는 거처럼 이동하면서

구관사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후임과 같이 구관사 입구에 도착해서 안쪽을 LED로 조심스레 비춰봤다.

신기한 게 나 말고도 누군가는 궁금해서 이곳을 와봤을 텐데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비가 오는데도 바닥은 먼지가 뽀송뽀송했다.

입구 앞에서 1회용 카메라를 꺼내서 태엽을 감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후임이랑 같이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안에는 예전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먼지가 쌓여서

구석에 버려져 있었고 의외로 바닥은 깨끗한 편이었다.

누가 예전에 한번 청소를 하다 만 느낌이었다.

그런데 실내가 하도 어둡고 밖에 비가 와서 빛이 하나도 안 들어왔다.

LED 없으면 진짜 1미터도 안 보일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LED로 좌우를 살피면서 점점 안으로 들어가는데 안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뒤에서 후임이 "ㅇㅇㅇ병장님 더 이상 안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하고 말을 걸었다.

내가 뒤돌아서 웃으면서 "졸았냐? 병신 ㅋㅋㅋㅋㅋ"하고 웃는데 후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 새끼는 지도같이 오자고 해놓고 왜 이리 겁이 많냐 ㅋㅋㅋㅋ'

속으로 웃으면서 따귀를 치려고 하는데 순간 등 뒤에서 소름이 확 돋았다.

뭐지? 하면서 뒤돌아보려고 하는데 뭔가 뒤돌아보면 큰일 날 거 같은 공포가 들었다.

많은 심령 스팟을 가봤고 무덤에서 잠도 잘 정도로 강심장에 귀신을 본적도 없었다.

그러나 이 공포감은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었고 시골의 사당에서 귀신을 불러낸다고

안에서 분신사바를 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공포였다.

 

 

 

 

 

 

후임은 기겁을 하더니 led를 던지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후임의 led가 클럽의 사이킥처럼 번쩍번쩍하면서 빛을 깜박였다.

뭔가 나를 덮칠 거 같은 공포가 들었지만 나는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1회용 사진기를 꺼내서 바로 태엽을 감고 내 주변을 찍기 시작했다.

플래시가 터지면서 LED 불빛과 함께 벽이 환해졌는데 구석 천장 쪽에서

뭔가 그림자 같은 검은 형상이 사이킥이 켜진 클럽에서처럼

플래시 빛이 환해질 때마다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더 이상 이곳에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날 거란 생각이 들면서 나 역시

재빠르게 후임의 led를 집어 들고 입구 쪽으로 뛰어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입구로 나왔는데 어디에도 후임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래서 비를 맞으며 탄약고 초소 쪽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갔다.

초소에 들어서니 후임 놈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야 이 씨발새끼야 너 혼자 이렇게....."

욕지거리를 하면서 쳐다보는데 후임 놈이 혼자 처울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거 발설하면 안 될 거 같아서 후임 놈이랑 서로 말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근무시간 내내 서로 조용히 있었다.

 

 

 

 

 

 

근무를 끝내고 내려와서 후임 놈을 담배 피우는 곳으로 불렀다.

후임은 여전히 떨고 있었으며 부들거리는 손에 따뜻한 자판기 율무차를 쥐여줬다.

"너도 뭘 본 거야?"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후임은 아까 구관사에서 내 뒤를 비추고 있었는데 뭔가 그림자 같은 게 움직이는 걸 봤다고 했다.

아까 내가 사진기로 찍은 그놈과 같은 놈인 거 같다.

나도 뭔가를 본거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놈에게 사진을 찍은 건 비밀로 하고 그날은 그렇게 마무리를 했다.

분명 뭐가 있었고 난 그걸 사진기로 찍은 것이었다.

 

 

 

 

 

 

다음날 사단 들어가는 행정병에게 사진기를 맡기고 현상을 부탁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행정병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6시에 행정병은 복귀를 했고 나에게 인화된 사진과 필름을 주었다.

재빠르게 사진을 확인한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인화한 사진들이 전부 반이 검게 돼서 절반만 보였던 것이다.

뭔가 검은 물체가 사진기를 가려서 절반만 찍힌 것이었다.

짜증이 나서 필름을 확인했는데 필름이 마치 타들어간 거처럼

각 사진별로 절반쯤 푸르스름하게 변색이 돼서 검게 인화가 되었던 것이다.

절반의 사진에는 건물의 모습이 찍혔는데 결정적인 건 놈을 찍지를 못했다.

분명 놈을 향해서 플래시를 터트렸는데 사진의 절반이 날아가서 놈은 찍히지 않았다.

 

 

 

 

 

 

전역한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날의 밤이 잊혀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