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던 그사람

2017. 10. 16. 03:29귀신이 보인다

 

 우리 부대에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가 있다.


연병장이 두 개인데 언덕 아래 축구장과 언덕 위에 족구장이 있는 연병장이 있다.


언덕 위에 족구장에 나무들이 심어진 곳 중앙에 야외 온도계가 설치된 곳이 있었는데


불침번 근무를 서면 항상 야외 온도계를 체크하러 가야 했다.


야외 온도계 옆에 타종(화생방 종)이 "ㄱ"모양의 쇠 파이프 기둥에 달려있는데 예전에 어떤 장병이


나무에 줄을 걸고 타종(화생방 종)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려 목을 매고 자살을 했었다.








지금같이 병영 선진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후임 때리고 가혹행위를 하는 게 당연한 시대였기에


그 장병은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결국 자살을 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불침번들이 야외 온도계를 체크하러 가서 나무 위에 매달린


사람을 보고 기절하거나 도망치는 사건들이 벌어졌다.


사람이 한이 맺혀서 자살을 하면 한이 풀릴 때까지 


그 자리에 계속 머물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장병도 한이 맺힌 건지 자살한 그 자리에서 목맨 채로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불침번들은 대충 전 근무자가 작성한 온도 베껴 쓰고 안 나가거나


야외 온도계로 가서 온도계를 보는 일을 기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대에서 임의적으로 야외 온도계를 보는 업무를 일직 하사가 전담하고


근무교대 때만 확인하도록 규정을 바꿨었다.


그 이후로 불침번이 야외 온도계 옆에서 귀신을 보는 일은 없어졌고


일직 하사도 대충 야매로 처리했기에 야외 온도계 근처로 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세월이 지나면서 지나면서 장병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이야기가 며칠 전부터 다시 사람들에게 돌기 시작했다.


이유가 사단장이 2대대를 기습 방문했는데 시기가 사단 기동 전이라 화생방 준비 태세 훈련 점검하다


우연히 야외 온도계를 시찰했는데 야외 온도계가 터진 줄도 모르고 방치하던걸 걸려서


완전히 털리고 그간 가짜로 썼던 기록들도 다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사단 지침으로 야외 온도 실시간으로 사단에 보고하고 야간에


불침번이 한 시간에 한 번씩 보고하라고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부대는 순식간에 공포에 휩싸였으나 새로 온 중대장은 세상에 귀신이 어딨냐며


애들을 모아놓고 가짜로 보고하는 근무자는 지옥을 구경시켜준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밤이 되고 당일 불침번들은 얼굴이 잿빛으로 변해서 잠에 들었고 


나는 불침번 4번 초였고 2시 반부터 근무라 하필 또 시간 때가 귀신들한테 핫한 시간대여서 더 걱정이 됐다.


3번초가 날 깨우는 순간 평소 같음 꾸물대기라도 했을 텐데 정신이 또렷해지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성격이라 더 겁을 먹었던 거 같다.


환복을 하면서 전임 근무자한테 물어봤는데 전임 근무자인 후임은 귀신은 못 봤다고 했다.







 

"역시 귀신은 무슨 귀신.... 소문은 믿으면 안 된다니까?"


그렇게 근무교대를 하고 나서 소대 바닥에 물을 뿌리고 현황판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마대로 흥건해진 바닥을 닦으며 넘치는 물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데


외곽 근무자들이 근무교대를 하고 소대로 들어왔다.


다들 근무 끝나고 담배 한 개비씩 폈는지 나를 지나쳐 자기 자리로 가는데 담배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온도를 체크하러 영내 밖으로 나가기 전에 인원체크를 하고 행정반에 신고를 하러 갔다.







 

야간에 소대 밖으로 나가려면 행정반으로 해서 나가야 하기에 행정반에 가서 야외 온도계 체크를 보고하고 밖으로 나갔다.


후임들이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다고 혼자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솔직히 고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때문에 긴장이 되고 식은땀이 났다.


점점 야외 온도계 쪽으로 다가가는데 타종(화생방 종) 위쪽에서 무언가 샌드백 같은 게 나무에 줄로 매달려서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11월 초겨울이라 쌀쌀하고 바람도 불어서 나무가 움직이는 거라고 혼자서 중얼거렸지만 나무 가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줄에 매달려서 바람에 흔들리는 게 마치 곰 같은 게 줄을 잡고 나무에 매달려있는 거 같았다.


개쫄아서 도저히 야외 온도계에 다가가지 못하고 LED로 야외 온도계 옆에 타종(화생방 종) 위를 비췄는데 진짜 기절할뻔했다.








 

웬 군인이 목에 줄을 매달라고 나무에 매달려 있는데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숨이 멎고 다리가 휘달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 시.... 발..... 저게 그..... 말로만......"


더 이상 말도 못하겠고 오줌 쌀 거 같아서 그냥 바로 뒤돌아서 행정반으로 기어가듯 달려갔다.


후임들은 못 봤다는데 왜 하필 나한테 나타났는지 정말 원망스러웠다.


행정반으로 겨우 들어갔는데 나름 짬 좀 있던 시기라 누구한테 쪽팔려서 말도 못하겠고


바로 화장실 급한척하고 바로 내무반으로 튀어들어갔다.







 

내무실에 도착해서 너무 무서웠지만 혹시나 해서 창으로 야외 온도계를 바라봤는데


아직도 그놈이 매달려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와 귀신이 저렇게 생생하게 보이는구나 너무 놀라서 소대 침상에 주저앉아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환상이라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게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진짜 밖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시계만 보면서 교대시간만 발 떨면서 기다렸다.


진짜 언제든지 귀신이 소대안으로 들어올 거 같아서 너무 무섭고 등 뒤가 서늘했다.







 

진짜 1분이 한 시간 갔고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남묘호랭님 님이란 님은 다 찾아가며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하면서 시계를 봤다. 분명 10분은 지난 거 같은데 3분도 안 지났고


땀은 땀대로 무슨 한여름 사우나처럼 물 흐르듯 흘러내렸다.


공포에 떨면서 부들부들 거리다 겨우 교대시간이 되어 다음 근무자를 깨우고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뺨을 때렸다.


거울을 보는데 마치 뒤에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거 같아서 급하게 빨리 오줌을 싸고 내무실로 들어왔다.







 

다음 근무자인 고참이 야외 온도계에서 뭐 본거 있냐고 물어봤는데 차마 뭐 봤다고 말은 못하고


짬먹은 놈이 호들갑 떤다고 욕먹을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다.


그렇게 근무교대를 하고 자리에 누었는데 진짜 잠도 안 오고 너무 무서워서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귀신이 보일까 봐 고개도 옆으로 못 돌리고 죽은 듯이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계속 공포에 떨다 어느덧 순간 잠이 들었는데 기상나팔 소리에 눈을 떴다.







 

다행히 아침이 온 것에 감사하며 침구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일직 하사가 들어오더니


아침점호 없으니까 다들 영내 대기하고 분위기 안 좋으니까 조용히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뭔 일이지 하면서 환복을 하는데 소대 애들이 웅성웅성하면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뭐지?" 하면서 밖을 쳐다봤는데 앰뷸런스도 와있고 레토나도 5대 이상 들어와있고


무슨 경찰특공대 차량처럼 생긴 검은색 트럭도 연병장에 서있었다.







 

그리고 야외 온도계 주변에 인계철선같이 줄이 쳐져 있고 노란색 수사중 철판이 달려있었다.


마침 말번 초 불침번이 소대로 들어와서 소대 고참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말번 초가 하는 말이 어젯밤에 3소대 일병 한 놈이


야외 온도계 옆 타종(화생방 종)이 있는 나무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을 한 것이었다.


'뭐 ㅅㅂ 그럼 내가 본 게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었어?'


그게 더 충격이었다. 사람이었으면 바로 신고를 했어야 했는데 나 혼자 귀신인 줄 알고


지레 겁먹고 사람이 자살을 했는데 무시하고 자버린 거 아닌가.







 

진짜 그 누구에게도 말을 못하겠고 그냥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중에 헌병대에 조사도 받았지만 나는 결코 그가 목을 메단 걸 봤다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그를 방치한 게 마음에 짐이 되어 내 군 생활 끝날 때까지 괴로웠고 힘들었다.


조사가 끝난 후 소대장이 이야기를 해주는데 유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자살을 한 건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3소대에서도 에이스였고 빠릿빠릿하게 일 잘하고 쾌활하던 친구였다고 한다.


여자친구도 없었고 동기들한테도 잘하던 친구라 다들 왜 자살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날 그친구는 탄약고 3번 초였는데 근무 끝나고 나서 다들 컵라면을 받아서 행정반 옆 야외 벤치에서 4명이 담배를 피우면서


컵라면을 먹었는데 다 먹고 정리하고 다들 들어가려고 하는데 혼자 담배 한 개비 더 피겠다고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친구는 야외 온도계 옆 나무를 타고 올라가 자살을 한 것이다.


도대체 왜 자살을 한 것일까? 그친구는 진짜 귀신을 보고 홀린 것일까?


그 친구가 나무에 목을 매단 시간이 추측건대 내가 야외 온도계 보러 가기 10분전쯤 시도를 한거 같다.


만약 내가 귀신으로 착각하고 공포에 떨지 않았다면 다가가서 상황 파악하고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 자신이 너무 병신 같고 비참했다. 


행정보급관은 상황이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후 야외 온도계 옆에 있던 나무들을 모두 잘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