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도 서울의 하루

2016. 9. 30. 02:02범죄의 기억

 

 

 

이런 이야기하면 아재 소리 들을 수 있는데 94년도에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근데 이때는 정말 살벌했던 기억들이 많다.

이때 당시만 해도 뒷골목에 가면 삥을 뜯기는 게 당연했고

삥만 뜯으면 다행이었다. 얼차려를 주거나 끌려가서 화풀이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동내에 양아치들이 있어서 80년대 전영록 영화에서나 보던 치한들이

일정 확률로 출몰했다. 거리는 약육강식의 현장이었고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웠다.

 

 

 

 

 

그런데 경찰이 폭력배보다 더 무서웠던 시대였다.

불심검문이 툭하면 일어나고 술 먹은 아재들은 경찰들과 다투기 일 수였다.

그리고 이때만 하더라도 민주경찰이라고는 하지만 안 보이는 데서 때리기도 많이 때렸다.

딱 살인의 추억 생각하면 감정이입이 빠를 것이다.

그날은 학교 숙제 때문에 미술관에 견학을 하고

밤 8시쯤 종로에서 서울대로 지하철을 타고 가고 있었다.

 

 

 

 

 

일요일이었고 밤 8시라 지하철은 한산했다.

근데 신도림에서 진짜 전영록 영화 돌아이

 

(80년대 전형록이 감독&주연한 씨리즈 청춘영화)에서나 볼만한

징박힌 가죽 장갑에 깃을 하늘 끝까지 올린 가죽점퍼

징박힌 청바지에 스니커즈 영화를 찢고 나온듯 한 네 명이 동시에

지하철을 탔다.

 

 

 

 

 

지금이야 패션 웃기네 하고 웃겠지만 그때는 몰려다니는 애들은

처다도 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한무리의 하이에나들을 연상시키며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마침 한 아가씨가 이어폰을 꼽고 창가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이들이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검은 창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고 있었다.

다큐 동물의 왕국에서 항상 사자의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들은

물먹느라 한눈을 판 가젤이나 어린 짐승이듯이

그녀는 4마리의 하이에나의 먹이가 되었다.

 

 

 

 

 

저녁 8시 지하철 2호선에서 사람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4명의 양아치는 아가씨를 둘러싸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아까 말했듯 돈만 뜯기면 다행인데 80년대 영화에서 보듯

같이 놀자고 협박을 하면서 여자들을 데려가기 일쑤였다.

요즘같이 돈을 훔치는데 있어서 분,초 단위로 바쁘게 움직이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느긋하게 여성을 둘러싸고 한 놈씩 돌아가면서 얼굴을 만지면서

협박을 하고 가방을 뒤진다.

핸드폰이 있나 아님 역에 전화기라도 있나? 경찰을 불러도 20~30분이

훌쩍 넘어야 겨우 온다.

지금 경찰들처럼 자기 직무에 투철하지도 않고 요령이 생활화되어

있는 경찰들이라 미란다 원칙 외우고 다니는 경찰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신도림에서 탄 놈들은 신림이 올 때까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에 너무 화가 났다.

그러나 힘이 없는 걸 어쩌겠는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아니 도와줬다가는

진짜 험한 꼴 당할 판이라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못하는

나의 무력함이 너무나 가슴을 후벼파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내가 내리는 서울대 입구에서도 내리지 못하고 그놈들에게

잡혀서 울고만 있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지하철을 내려서 밖으로 나왔는데 지하철 근처

골목에서 또 한 여성이 불량배들에게 잡혀서 둘러싸인 체 울고 있었다.

지금 봤으면 그냥 운동 한 적도 없는 날라리 양아치들일 뿐인데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그들이 너무 무서웠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내 코가 석자라 외면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세상을 한탄하며 내가 조금만 힘이 있었으면 도와줬을 텐데 하면서

분노를 삭히면서 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집을 100미터 남겨둔 언덕에서

나 역시 불량배들에게 붙잡혔다.

2명이었는데 청재킷에 그 당시에 유행하기 시작했던 닥터마틴을 신고 있었다.

잡히자마자 어깨동무를 하고 끌려갔는데 산 중턱 공원에 도착하자

따귀를 때리면서 삥을 뜯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인트를 까였는데 순간 김 첨치가 생각이 나더라

닥터마틴으로 맞은지라 너무 아파서 다리를 절 정도였다.

근데 웃겼던 게 맞으면서 왜 김 첨치가 생각이 났는지 ㅋㅋㅋㅋㅋ

정말 운수 좋은 날이었다. 남의 불행을 보며 분노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나한테 올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건 여담인데 학과과정에서 내가 운수 좋은 날을 배우기 전이었는데

나는 이미 김 첨치를 알고 있었다. 이건 이유가 있었는데

원래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키스만 해도 임신하는 줄 알고 살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야한 것을 접하기 힘든 시대라 집에 있는 물건들을 활용해서

야한 것들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우연히 아버지의 책 중에 마루타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책 초장에 일본 장교가 기생집에서 기생들과

술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 장교 놈의 취미가 특이했는데 바로 여성의 음모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생의 치마 속에 손을 넣더니 음모를 한 움큼 쥐어뜯었다는 것이다.

여성은 너무 놀라고 아파서 바로 기절을 하고 말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나에게는 정말 자극적이면서 놀라운 신세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여자랑 응응 안 해본 놈이 쓴 헛소리일 뿐이었다.

음모를 한 움큼 쥐어뜯었다고 기절했으면 제모하는

여자들은 다 기절 한 번씩 해봤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닥치는 대로 아버지의 책을 뒤지면서

야한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나에게는 아버지 책 말고는 야한 내용을 접할 수가 없기에

필사적으로 보면서 옛 고전들을 두루두루 읽기 시작했다.

B 사감과 러브레터도 노처녀 사감과 여자 기숙사만의 섹슈얼한 분위기에서

남자 없이 외로운 그녀가 자기 위안 사생활을 생도들에게

 

들키는 장면을 생각하며 봤을 정도로

야한 장면에 목을 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읽게 된 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었는데

김 첨치가 고생을 하며 마누라를 위해 일하는 걸 보고

분명 집에 가서 마누라랑 뜨거운 밤을 보내겠구나라는 기대로

계속 읽어나갔었다. 그런데 설렁탕을 사서 집에 갔는데

부인이 죽어 있는 상황이어서 너무 충격적이었고 실망스러워서

잊지 않고 기억을 하게 되었다.

 

 

 

 

 

하여간에 돈이 동전으로 3천 원밖에 없다고 조인트 까이고 처맞으면서

운수 좋은 날과 김 첨치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처맞고 나서 끝날 줄 알았는데 그때 당시 삥 뜯을 때 유행이

돈을 뜯고 나면 얼차려를 한 시간 동안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뜯긴 것도 억울한데 한 시간 동안 군대에서나 하던 선착순과

(나 혼자서 찍고 오는 거) 팔 굽혀 펴기 하면서 내려간 상태에서

멈춰있는 것도 하고 울면서 버텼다.

 

 

 

 

 

그렇게 신나게 털리고 나서 신고하면 죽여버린다는 경고를

10분 동안 듣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서 공원 입구로 나오는데 입구 옆

풀숲에서 엉덩이를 까고 쭈구리고 앉아서 똥을 누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손에 들고 있던 휴지 한뭉치가 애처로워 보였다.

 

 

 

 

 

1994년 서울의 뒷골목은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처럼

 

맹수들이 우글대는 무시무시한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