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벌어진 어처구니 없던 사고

2017. 11. 2. 11:34범죄의 기억


1952년 중부전선의 전투가 참호전으로 바뀌면서 치열해지고

고착화되면서 수많은 군인들을 전선에 갈아 넣는 상황이었다.

당장 전선에 투입될 군인들을 훈련하기 위해 장병들을 징집해서

훈련과 교육을 교육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땅 1센티를 차지하기 위해 100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누가 전선으로 가고 싶겠는가? 당연히 도망병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교육대에 새로 교육훈련 책임자로 부임한 소위가 한 명 있었다.

원래 전방 화기 중대 선임장교로 있다가 교육대의 대장으로 임명이 됐는데

임무를 수행하던 중 2회에 걸쳐서 도망병이 발생을 했고

그 일로 대대장한테 갈굼 당하고 구타를 당했었다고 했다.


가뜩이나 부임한지 얼마 안 돼서 사고가 두 번이나 터지는 바람에

심적 부담이 가중되는 와중에 3번째 도망병이 발생을 했다.

 

 

 

 

 

 

 


가뜩이나 대대장에게 찍힌 마당에 3번째 도망병이 발생을 하자

그도 더 이상은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도망병 문제로 계속 고심을 하다가 더 이상의 도망병이 발생하면 안 되기에 결심을 하고

교육대의 전 대원을 훈련장으로 집합시킨 다음 구령대에 올라가

대원들 앞에서 훈시를 했다.

 

 

 

 

 

 

 

 

"우리 교육대에서 도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우리 군의 전통과 명예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대원들을 한 명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라고 말한 다음 허리에 차고 있던 45구경 콜트 권총을

뽑아들더니 자신의 심장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겨벼렸다.

 

 

 

 

 

 

 

 

총소리와 함께 소위가 쓰러지자 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충격에 그 자리에서 쓰러진 대원도 있었다.

전쟁 기간 중이라 전선에서 이탈하는 도망병이 수없이 많은 시절이었다.

한창 고지전이라 진짜 군인들을 믹서기에 넣고 갈어버리던 것처럼

전선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갈려나갔다.

 

 

 

 

 

 

 

 

본인이 대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죄책감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도망병이 계속 발생하기에 자책감도 크고

대대장을 볼 면목도 서지 않았을 것이다.

도망병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을 희생해서 도망병을 막으려 했던

한 소위의 책임감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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